봄바람과 함께 걷는 느린 산책
봄날 아침이다. 바람이 내 어깨를 다정하게 툭툭 두드린다. ‘이제 좀 나가보지 그래?’ 그렇게 나는 봄의 부름에 이끌려 길을 나선다. 행선지는 없다. 걷는다는 건 때때로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그저 나를 데리고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풀잎 하나가 고개를 들고 햇살을 받는다. 나는 그것을 본다. 어쩌면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바라보듯 그렇게. 봄은 말없이 자라나지만, 그 고요 속에는 온 세상의 속삭임이 숨어 있다. 그 속삭임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느리게 걷는다는 건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이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나는 더 조용히 걷는다. 마음속에도 봄이 들어야 한다. 잊고 있던 꿈이 꽃망울을 틔우고, 눌려있던 감정들이 꽃비처럼 흩날린다. 걷다가 슬퍼지고, 걷다가 웃는다.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방해하지 않게.
봄바람은 어쩌면 나를 위한 시 한 편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알 수 없지만, 가슴에 와 닿는 문장처럼. 나는 그 시를 따라 걷는다. 삶은 반드시 달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봄이 매년 나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느린 걸음으로 또 한 페이지를 쓴다. 꽃잎이 흩날리는 길 위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내 작은 고백처럼, 조용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