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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버그만의 내면의 소리

쏠헤커 2025. 4. 11. 09:35





산에 오를 때면 발아래 작은 돌멩이가 발을 디디라고 속삭인다. 강을 건널 때면 흐르는 물결이 발목을 적시며 방향을 알려준다. 스웨덴의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말한 "우리 안의 작은 목소리"는 이렇듯 고요하지만 단호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영화 필름보다 더 두꺼운 인간 내면을 가르며, 오늘도 우리의 갈피를 잡아준다.


어릴 적 시냇가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동그랗게 퍼졌다. 그 동심원은 닿을 곳 없는 마음의 파장을 닮았다. 심리학자 칼 융은 '무의식'을 바다에 비유했다. 표면의 파도는 이성의 언어지만, 깊은 심해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조류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말한 '작은 목소리'는 바로 그 조류다. 논리로 포장된 삶의 결정 뒤에 항상 묵직한 침묵이 깔려있음을, 그녀는 영화 〈가스등〉의 촛불처럼 흔들리지 않게 말했다.

"두려움은 귀를 막지만, 직관은 고막을 찢는다."

현대인은 데이터라는 잣대로 세상을 재단한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지적하듯, 우리는 빠른 판단(직관)과 느린 사고(분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러나 뇌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냉정한 결정조차 감정의 토대 위에 서 있다고 주장했다. 마치 겨울 나무가 뿌리 속 영양분을 끌어올리듯, 우리도 오래된 무의식의 저장고에서 답을 끄집어낸다.


상처는 빛이 들어오는 길목이라 할수 있다. 내면의 목소리는 종종 상처로 포장된 선물이라 할 수도 있다.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가 사회적 규범의 감옥을 세운다면, 버그만이 말하는 작은 목소리는 그 철창을 두드리는 망치다. 21세기 심리학의 화두인 '자기자비(Self-Compassion)'는 이 망치 소리를 듣는 법을 가르친다. 크리스틴 네프 교수의 주장처럼, 자신을 타인처럼 대할 때 비로소 내면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강물이 돌을 갈아 만든 자국처럼, 우리의 결정에도 결이 있다. 노벨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프레이밍 효과'는 같은 사실도 표현 방식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러나 잉그리드 버그만은 그러한 프레임을 벗겨내라 고한다.


달빛에 젖은 돌계단을 오를 때, 조용히 들려오는 숨소리를 들어라. 그것은 수도없이 밟힌 돌뿌리의 외침이다.
우리의 작은 목소리도 그러하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사바나에서 들었던 바람 소리, 어머니의 태반 속에서 들은 심장 박동이 유전자에 새겨 보낸 암호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1956년 영화 〈안나와 왕〉에서 보여준 눈빛을 기억하는가? 대사 없는 그 장면에서 그녀는 카메라 렌즈를 관통해 관객의 심장을 쳤다. 내면의 작은 목소리도 처음엔 외로운 메아리에 불과하지만, 계속 듣다 보면 그것이 삶의 주파수가 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