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면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난다. 서로 안부를 묻고, 주변 가족 친지들의 소식을 듣는다. 음식과 함께 술을 한두잔 기울이다 보면, 옛 이야기부터 스멀스멀 전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지난 해에 들었던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 대부분이라 지루하다. 자식들이 취업하고 결혼하고 손주를 낳는다는 과정은 그래도 들어 줄만하다. 왜냐하면 좋은 이야기가 오고가고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왕래를 하며 지냈던 사촌 동생을 만났다. 나는 그가 동생이지만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굴곡진 유년시절을 지나 학창 시절을 건너뛰고 험악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도덕적 기준을 흐트리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 도덕적인 기준이란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어머니가 일러준 교훈이 전부라 했다. 어른을 어른답게 예우하고, 가장이면 가족에 대한 책임을 잊지 않으며, 직장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동료들과는 유연하게 지내는 그의 삶은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다. 단 하나의 기술로 평생을 일하고 정년 퇴직을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그의 기술이 필요하다며 계속 일해달라고 한다. 벌써 8년째 이어지고 있으니 그의 성실함과 기술력은 그 누구와도 비교가 안될만큼 인정을 받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에 아이들을 모두 출가 시키고, 이제 단출하게 부부만 남았다. 동생은 아내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불만을 털어놓았다. 아내는 남편이 꽉 막혔다며 답답해 한다. 결혼 한지 40년이 되었다. 그동안 생계와 자식 키우느라 온 에너지를 쏟았다. 자신들의 몸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이번 결혼 기념일엔 멋진 이벤트를 해야하지 않겠냐고 물으니 질색을 한다. 몇년전 결혼기념일에 백화점에서 어렵게 선물을 사서 아내에게 건냈는데, 좋은 소리는 못듣고 핀잔만 들었다며 그 이후로는 이벤트라는 것은 아예 지워버렸단다. 여자의 마음을 조금씩이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던졌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듯한 느낌이다. 아내는 그동안 재태크의 기회를 여러번 놓치고, 사회적인 지위를 더 높이니 못하며,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이 안타깝다고 했다. 남편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어렵게 결혼하여 지금까지 가장으로써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만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조언을 하였다. 전후사정없이 불쑥 화를 내는 남편과 소통하기가 어렵다고 일축한다. 이 부부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까요? 아니면 극적인 변혁이 일어나 알콩달콩 노후 생활을 할까요?